맨위로가기

이회성 (소설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회성은 1935년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국계 일본인 소설가이다. 1969년 군조 신인문학상, 1972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다듬이질하는 여자』, 『백 년의 여행자들』 등이 있으며, 일본 문단 최초의 외국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적 취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홋카이도 삿포로 니시 고등학교 동문 - 다나카 유코 (배우)
    다나카 유코는 일본의 배우로, NHK TV 소설 『마 언니』로 데뷔하여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일본 아카데미상과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등에서 수상하고, 드라마 『오싱』으로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했다.
  • 사할린섬 출신 - 이와모토 데쓰조
    이와모토 데쓰조는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뛰어난 공중전 실력과 8,000시간 이상의 비행 시간을 기록한 숙련된 조종사였으나, 전후 공직 추방 후 3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 사할린섬 출신 - 기타가와 고루고로
    기타가와 고루고로는 윌타족(오로크)의 권익 보호와 문화 보존을 위해 활동하며, 홋카이도에서 윌타족 대표로 활동하며 소수 민족의 어려움 개선에 힘썼고, 윌타어 보존과 민족 문화 계승에 헌신하며 "오로초 불꽃 축제"에서 샤먼으로도 활동한 인물이다.
  •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류는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데뷔하여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영화감독, 언론인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일본의 작가이다.
  •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 오가와 요코
    오가와 요코는 1988년 등단하여 아쿠타가와 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 에세이 작가, 번역가이다.
이회성 (소설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출생일1935년 2월 26일
출생지일본 가라후토청 마오카 (현재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
직업소설가
개인 정보
국적조선적대한민국
모국어한국어
사용 언어일본어
학력
학사문학사
출신 학교와세다 대학 러시아 문학
작품 활동
활동 기간1969년 -
장르소설
데뷔 작품『또 다시 길』 (またふたたびの道) (1969년)
주요 작품『우리들 청춘의 도상에서』 (われら青春の途上にて) (1970년)
『다듬이질하는 여인』 (砧をうつ女) (1972년)
『미완의 꿈』 (見果てぬ夢) (1977년 - 1979년)
『백 년의 여행자들』 (百年の旅人たち) (1994년)
수상
수상 내역군조 신인 문학상 (1969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1972년)
노마 문예상 (1994년)
기타
로마자 표기Ri Kaisei 또는 I Hesŏng
한글 표기이회성
한자 표기李恢成
로마자 표기 (문화어)I Hoeseong
로마자 표기 (매큔-라이샤워)I Hoesŏng

2. 생애

이회성은 1935년 사할린 남부 가라후토(마오카)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0세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이 항복하면서, 일본인 정착민들과 함께 살던 이회성 가족은 소련군을 피해 가라후토를 떠났다. 대일본 제국의 옛 영토에서 돌아오는 이주민들을 위한 나가사키의 처리 센터까지 갔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홋카이도 삿포로에 정착했다. 이때 이회성의 누나는 가라후토에 남겨졌는데, 이는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4]

홋카이도 삿포로 니시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러문과에 진학했다. 와세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유학생 운동에 참여했으며, 졸업 후에는 조선어로 작품 활동을 하려 했으나, 일본어로 활동하기로 결심했다. 조선총련 중앙교육부, 조선신보 기자로 일하기도 했지만,[6] 이후 조선총련에서 벗어나 1969년 군조 신인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1972년 『다듬이질하는 여자』로 일본 문단 최초의 외국인으로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70년에 몰래 대한민국을 방문했고,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인 1972년에 다시 방한했다. 이때는 조선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장기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했다. 1974년 4월에는 박정희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자,[7][8] 김석범 등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10][11][12]

1995년 11월에 한국 입국이 가능했지만, 그 후에도 국적 문제를 이유로 여러 번 한국 당국과 입국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권 발족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2. 1. 유년 시절과 성장

이회성은 1935년 사할린 남부 가라후토(마오카)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0세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을 가져온 일본의 항복 이후, 일본인 정착민들과 섞여 살던 이회성 가족은 소련군으로부터 탈출하여 가라후토를 떠났다. 그들은 대일본 제국의 옛 영토에서 귀환하는 이주민들을 위한 나가사키의 처리 센터까지 갔지만, 계획했던 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홋카이도 삿포로에 정착했다. 당시 이회성의 누나는 가라후토에 남겨졌고, 그는 후기 작품에서 이것이 그에게 남긴 충격적인 인상을 묘사했다.[4] 홋카이도 삿포로 니시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러문과에 진학했다. 와세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유학생 운동에 참여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에는 조선어로 작품 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어로 활동할 것을 결심했다.

2. 2. 작가 활동

이회성은 1969년 『杵をうつ女』(키누타오우츠온나, 다듬이질하는 여자)로 군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한국어 단어를 드물게 사용한 점이 주목받았다.[4] 와세다 대학교 졸업 후 처음에는 한국어로 창작 활동을 하려 했으나, 이후 일본어로 활동하기로 결심했다. 조선총련 중앙교육부와 조선신보 기자로 일하기도 했지만,[6] 이후 조선총련에서 벗어났다.

1972년에는 『다듬이질하는 여자』로 일본 문단 최초의 외국인으로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다하지 못한 꿈』, 『백 년의 여행자들』 등이 있다.

1970년 비밀리에 대한민국을 방문했고, 1972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 다시 방문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국적 대신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국적 문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고, 1995년 11월에야 다시 입국 허가를 받았다. 1998년 김대중햇볕정책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1974년 4월, 박정희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 180명이 구속되는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했다.[7][8] 이회성을 포함한 여러 작가들은 단식 투쟁을 벌이며 이에 항의했다.[10][11][12]

이회성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과오에 대해 사과한 김정일의 고백은 역사 의식과 평화 헌법의 정신으로 일본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5]

이후 재일 한국인 작가 김석범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한 이회성의 발언과 대한민국 귀화를 비판했고, 두 사람은 잡지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2. 3. 한국과의 관계

이회성은 1935년 사할린 남부 가라후토 마오카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탈출했으나,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홋카이도 삿포로에 정착했다. 이때 사할린에 누나가 남겨졌는데, 이는 이회성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 후기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4]

1970년, 이회성은 비밀리에 대한민국을 방문했고, 1972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 다시 방문했다. 당시 그는 조선적이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국적 문제로 여러 차례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4] 1974년 4월에는 박정희 정권의 민청학련 사건으로 김지하 등 많은 대학생들이 구속되자, 이회성은 김석범 등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7][8][10][11][12]

1995년 11월에야 다시 한국 입국 허가를 받았지만, 국적 문제는 계속되었다.[4] 1998년, 김대중햇볕정책 시행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 작가 김석범은 이회성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 언급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에 대해 비판했고, 두 사람은 잡지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4]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이회성은 "과오에 대해 사과한 김정일의 고백은 역사 의식과 평화 헌법의 정신으로 일본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5]

2. 4. 정치적 입장과 논란

이회성은 친북한 성향의 재일 한국인 단체인 조선신보에서 기자로 일했지만, 이후 관계를 끊었다.[6] 1970년 비밀리에 대한민국을 방문했고, 1972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 다시 방문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국적 대신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국적 문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고, 1995년 11월에야 다시 입국 허가를 받았다.[4]

1974년 4월, 박정희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 180여 명이 구속된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자,[7][8] 이회성은 김석범, 김시종 등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였다.[10][11][12]

1998년, 김대중햇볕정책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 작가 김석범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한 이회성의 발언과 대한민국 귀화를 비판했고, 두 사람은 잡지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4]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이회성은 "과오에 대해 사과한 김정일의 고백은 역사 의식과 평화 헌법의 정신으로 일본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5]

3. 작품 세계

이회성은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소외된 사람들의 삶 등을 주제로 다양한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개인적인 경험과 역사적 현실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하위 섹션에서 이미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주요 작품들의 제목과 출판 정보를 요약하여 제시한다.


  • 주요 작품:
  • 『그리고 다시 길』 (코단샤, 1969)
  • 『우리들 청춘의 도상에서』 (코단샤, 1970)
  • 『가야코를 위해』 (신초샤, 1970)
  • 『청구의 숙』 (코단샤, 1971)
  • 『다듬이질하는 여자』 (분게이슌주, 1972)
  • 『나의 사할린』 (코단샤, 1975)
  • 임진강을 향할 때』 (카도카와 쇼텐, 1975)
  • 『유민전』 (카와데 쇼보 신샤, 1980)
  • 『백 년의 여행자들』 (신초샤, 1994)
  • 『가능성으로서의 '재일'』 (코단샤 문예 문고, 2002)
  • 『지상 생활자』 (코단샤, 2005-)


더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인 '주요 주제'와 '대표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주요 주제

이회성은 자신의 문학 작품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개인의 정체성, 특히 '재일'로서의 경험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을 탐구한다.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다듬이질하는 여자"는 재일 한국인의 삶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묘사한다.[1] "나의 사할린"에서는 작가 자신의 사할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곳에 남겨진 한국인들의 역사와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1]

오구리 코헤이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한 "가야코를 위해"는 재일 한국인 여성 '가야코'의 삶을 통해, 민족 정체성과 개인의 욕망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1] "임진강을 향할 때"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재일 한국인의 입장을 다룬 작품이다.[1]

"유민전"은 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1] "가능성으로서의 '재일'"은 '재일'이라는 정체성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과 의미를 탐구하는 에세이이다.[1]

만년에 군조에 연재된 "지상 생활자"는 장편 소설로, 재일 한국인의 삶과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1]

3. 2. 대표작

제목출판사출판 연도비고
砧をうつ女|키누타오 우츠 온나일본어분게이슌주(文藝春秋)1972훗날 문고판, 「그리고 다시 길・다듬이질하는 여자」 문예 문고
私のサハリン|와타시노 사하린일본어 (나의 사할린)코단샤(講談社)1975
伽倻子のために|카야코노 타메니일본어 (카야코를 위해)신초샤(新潮社)1970훗날 문고판, 오구리 코헤이 영화화
イムジン江をめざすとき|이무징가와오 메자스 토키일본어 (임진강을 바라보며)카도카와 쇼텐(角川書店)1975
流民伝|류민텐일본어 (난민 이야기)카와데 쇼보 신샤(河出書房新社)1980
可能性としての「在日」|카노세이토시테노 "자이니치"일본어 (재일은 가능성으로)코단샤 문예 문고2002
地上生活者|치죠 세이카츠샤일본어 (지상 생활자)코단샤(講談社)2005-군조에 연재, 제1부 북방에서 온 어리석은 자(2005), 제2부 미성년의 숲(2005), 제3부 난상(2008), 제4부 고통의 감명(2011), 제5부 해후와 사색(2015), 제6부 마지막 시도(2020)
그리고 다시 길코단샤(講談社)1969
우리들 청춘의 도상에서코단샤(講談社)1970훗날 문고판, 「우리들 청춘의 도상에서・청구의 숙」 문예 문고
청구의 숙코단샤(講談社)1971훗날 문고판
신예 작가 총서 이회성집카와데 쇼보 신샤(河出書房新社)1972
약속의 땅코단샤(講談社)1973, 1977
참여하는 말 대화집코단샤(講談社)1974
북이든 남이든 나의 조국카와데 쇼보 신샤(河出書房新社)1974「침묵과 바다」,「원의 안의 아이」 카도카와 문고
추방과 자유신초샤(新潮社)1975훗날 코단샤 문고
다 못 본 꿈코단샤(講談社)1977-79전 6권, 훗날 문고판
청춘과 조국치쿠마 쇼보(筑摩書房)1981
바람아 바다를 건너라 이회성 십 년의 대론도지다이샤(同時代社)1982
사할린으로의 여행코단샤(講談社)1983훗날 문예 문고
유역으로코단샤(講談社)1992훗날 문예 문고
백 년의 여행자들신초샤(新潮社)1994훗날 문고판
시대와 인간의 운명 에세이편 / 대론편도지다이샤(同時代社)1996
사자와 생자의 시장분게이슌주(文藝春秋)1996
사계신초샤(新潮社)2005
〈재일〉 문학 전집 제4권 이회성벤세이 출판(勉誠出版)2006


4. 수상 경력


  • 1969년: 군조 신인 문학상 - ''다시 두 번째 길'' (またふたたびの道|마타 후타타비노 미치일본어)
  • 1972년: 제66회 아쿠타가와상 - ''다듬이질하는 여자'' (砧をうつ女|기누타오 우쓰 온나일본어)
  • 1994년: 노마 문학상 - ''백 년의 여행자들'' (百年の旅人たち|햐쿠넨노 다비비토타치일본어)

참조

[1] 간행물 Titles Introduced in Japanese Book News Published in Other Languages 1991–98 http://www.jpf.go.jp[...] The Japan Foundation 1998-Winter
[2] 간행물 Dead-End in a Korean Ghetto: Reading a Complex Identity in Gen Getsu's Akutagawa-Winning Novel Where the Shadows Reside Routledge 2002-05-01
[3] 간행물 Invisible Immigrants: Undocumented Migration and Border Controls in Early Postwar Japan http://www.japanfocu[...] 2006-11-30
[4] 간행물 Ethnic Identities and Various Approaches towards Japanese Language: Analysis of Ri Kaisei, Kin Kakuei, and Tachihara Masaaki Purdue University 2000-11
[5] 뉴스 「過ちを認め謝罪した金正日の告白を、日本人は歴史認識と平和憲法の精神で受け入れるべき」 Tokyo News (東京新聞)
[6] 뉴스 「芥川賞 初の外国人 李氏」 朝日新聞 1972-01-21
[7] 웹사이트 故・金芝河さん(韓国の詩人) 独裁と闘った「抵抗詩人」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22-07-29
[8] 웹사이트 白基玩・張俊河…民青学連裁判記録、45年ぶり公開 https://japan.hani.c[...] ハンギョレ新聞 2018-12-10
[9] 서적 苦行 獄中におけるわが闘い 中央公論社 1978-09-30
[10] 뉴스 韓国軍法会議の判決に 抗議行動広がる 東京ではハンスト 国際連帯も 朝日新聞 1974-07-17
[11] 문서 1974年7月―金芝河たちの処刑 日本朝鮮研究所 1974-06-07
[12] 문서 金大中拉致事件から始まった日韓連帯運動 同志社大学 2021-03
[13] 간행물 韓国日誌 コリア評論社 1974-1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